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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7-13 13:43
삼성전자 LCD 故 연제욱씨 동생 증언내용
 글쓴이 : 삼성일반노조
조회 : 5,060  

[삼성전자 LCD 故 연제욱씨 동생 증언내용]

★ 동생 연미정씨 증언내용

안녕하십니까?
저는 고 연제욱님의 친동생 연미정입니다.

저희 오빠는 2004년 6월에 삼성전자 LCD탕정사업장에 엔지니어로 입사했습니다.
7라인 포토공정과 식각공정에서 라인을 셋업하고 유지보수하는 일을 했습니다.
3년 8개월 근무하다가 2008년 2월에 갑자기 가슴통증을 느껴 병원에 갔는데
종격동암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1년5개월의 긴 투병끝에 2009년7월 결국 28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고 술도 거의 마시지 못하는 오빠였습니다.
입사하기 전 매우 건강했고 헬스도 꾸준히 하며 몸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던 오빠였는데
입사하고 나서 원인을 알수없는 복통, 피부염, 호흡기질환, 어깨통증, 허리통증에 까지 시달렸습니다.

라인에 들어가면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났고 코피도 자주 났다고 했습니다.
노동강도가 너무 세서 어깨가 자주 빠졌는데 동료들이 빠진 어깨를 끼워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을 보니 평균 3일에 한번 병원에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담당의사선생님께서 회진을 돌면서 오빠와 저희 가족에게
"이것은 후진국에 태어난 죄입니다. 후진국병입니다."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항암치료에 들어가기 전 미리 정자를 채취하려고 검사를 받았는데
무정자라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식각공정에서 사용한 IPA라는 유해물질은 생식능력에 손상을 입힌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무리 봐도 산재가 틀림없었습니다.

오빠 장례식이 끝나고 어머니가 삼성전자 차장에게
"우리 제욱이는 일하다가 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고
산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차장은 "산재신청을 하실려면 회사를 통해 하세요. 산재를 대행해 주는 담당자가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환경안전팀 차장이 전화가 와서는 저희에게 몇가지 서류를 준비하라고 했고
집 앞까지 찾아와서 서류를 받아갔습니다.

그렇게 2010년1월에 회사가 저희를 대신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고
불과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불승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고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았던 개별역학조사 조차 하지 않고,
회사에서 제출한 작업환경측정결과 몇 장 보고 내린 불승인이었습니다.

열심히 일만했던 죄없는 노동자가 젊은 나이에 죽음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종이 몇장으로 개인질병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지
근로복지공단의 어이없는 태도에 저희가족은 또 한번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환경안전팀 차장에게 전화를 거셨습니다.
당연히 산재 승인이 날 줄 알았는데 왜 불승인이 난 줄 모르겠다며
재심사청구를 해야겠고,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차장은 불승인이 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했고 그럼 대체 원하는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정당한 보상도 받아야 겠고 LCD도 반도체처럼 라인공개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그 차장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라며 위에 보고하고 다시 전화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후 수차례 전화가 왔고 찾아온 것은 3번이었습니다.
 
5월3일에 전화가 와서는 "어머니 일이 잘 해결될 것 같아요.
제가 바빠서 그러는데 5월25일쯤 찾아뵙고 자세한 사항을 말씀드릴께요"라고 했습니다.

그 후 5월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집단산재신청, 피해자 증언대회, 추적60분 방영까지 되었는데
저희 가족은 회사와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5월25일.
환경안전팀 차장과 인사팀 차장이 집 앞으로 찾아 왔습니다.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니 절대 안 들어 온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그리 두렵고, 신경이 쓰이는지 사람이 없는 밀폐된 식당만을 찾았습니다.

그러더니 한다는 말이 이런저런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묻는 것이었습니다.

오빠 여자친구와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냐.
여동생은 삼성에스원을 언제 퇴사했으며 왜 퇴사했냐.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냐.
이사를 갈 생각은 없냐. 
어머니 건강은 어떠시냐.
아버지는 어떤일을 하시냐. 등등등 아주 사소한 것까지 캐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조건 회사를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본인들은 회사 종업원일 뿐이라서 결정권이 없고 위에 보고를 해서 다시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5월27일 또 찾아왔습니다.

산재처리 공식이 있답니다.
제욱씨 일당이 얼마인데 유족급여 공식에 대입하면 1억2천이 나오고,
산재가 승인되고 민사소송을 하면 얼마가 나오는데
회사는 100 퍼센트 과실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얼마를 줘야하고,
그것의 일부는 이미 삼성화재에서 5천만원을 받으셨기 때문에 총 2억 정도의 돈을 드리겠답니다.

계속 공식을 들먹이면서 오빠 목숨값이 얼마이니 이것 받으시라고 했습니다.
냉장고 흥정하러 온 것처럼 오빠 목숨을 두고 흥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지금 우리는 회사에 구걸을 하는 것이 아니다. 반올림 통해서 재심사청구를 하고
소송까지 가서 정정당당하게 그 돈을 받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반올림을 통해서 하면 뾰족한 수 있냐. 힘들기만 할거다.
그냥 이 돈 받으시는 것이 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올림이 봉사단체도 아니고 그들도 이익을 남기려고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심사청구해도 불승인 날 것이 뻔하고
소송까지 가게되면 2-3년은 걸릴텐데 그 동안의 생활은 어떻게 하실려고 그러냐고 했습니다.

생활고를 미끼로 집요하게 합의를 요구해 왔습니다.
집에 가서 생각 한번 해보시라고 다음에 또 찾아온다며 차장들은 떠났습니다.

산재가 불승인나면 90일내로 재심사 청구를 해야하는데 그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6월3일 차장들이 또 찾아왔길래 말했습니다.

우리는 90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반올림을 통해서 재심사청구를 해야겠고,
회사가 대체 어떤 자료를 냈는지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봐야 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90일이 마음에 걸리시면 회사를 통해 심사청구 해 놓으셨다가
위로금 받으시고 취소를 하시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지금 그 돈으로 공상처리를 해주시는 거냐고.
차장들은 둘 다 그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 말은 저희를 더욱 기막히게 했습니다.

제욱씨 병은 겉으로 드러난 게 하나도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데
삼성은 초일류기업이기 때문에 임직원이었던 사람에게 성의표시로 돈을 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올림을 통해 하시면 지금 제시하는 돈도 드릴수가 없다고 협박담긴 제안까지 했습니다.

겉으로는 산재신청을 돕는 것 같았지만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반올림과 만나지 않는 것, 소송까지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자신의 입으로 초일류라고 말했지만 피해자 유족을 대하는 삼성의 모습은 초하류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는 반도체만의 문제가 아니고 LCD까지 피해자가 점점 늘어가는 상황에서
누군가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고,
우리 제욱이 명예도 찾아줘야 한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차장들은 이렇게 돈을 드리는 것만 해도 제욱씨 명예는 찾은 거라고 했습니다.

5월말에 외국투자자들에게 삼성이 피해자 지원대책을 답변한 것으로 아는데 그것은 무엇이냐고 하니
그런건 잘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 어르신에게 거액의 돈을 들고 찾아간 것으로 아는데
그것은 어떤 공식에 의해서 그 돈을 들고 찾아 간것이냐고 물으니
돈 줬다는 객관적인 증거 있으면 가지고 와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저한테 눈을 부릅뜨며 하는 말이 "미정씨는 말좀 하지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우리는 부모님과 얘기를 하러 온것이지 미정씨와 얘기를 하러 온것이 아니에요." 라며
위협적인 눈빛을 보냈습니다.
자식 잃은 것도 비통한데 삼성의 그런 비인간적인 행동이 억울하고 분하셨는지
어머니께서 통곡하며 우셨고, 끝내 아버지까지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더이상은 참을수가 없어서 차장들에게 할 얘기 끝났으면 얼른 가시라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당신들은 부모아니냐고. 당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냐고 소리를 지르며
부모님을 모시고 나왔습니다.

인사팀 차장은 끈질기게 또 저희 아버지만 불러서 설득을 하려 했고,
산재공식을 보러가자며 아버지를 회사로 데려가려고 까지 했습니다.

결국 모든 제안을 뿌리치고 저희는 반올림을 찾아가서 재심사청구를 한 것입니다.

얼마후 오빠의 이야기가 인터넷 기사에도 났습니다.

기사가 뜨자마자 인사팀 차장에게 또 전화가 왔습니다.
기사를 봤는데 그 기사에 실린 말들을 정말 가족들이 한 말이 맞냐고 물었습니다.
회사를 믿고 하셨으면 잘 해결되었을 텐데
미정씨가 돈도 필요없다고 해서 일이 이렇게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또 전화드리겠다며 끊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차장들이 찾아오고 부터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약이 없으면 잠도 잘 수가 없습니다.
그 위협적인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일도 손에 잡히지 않으신다며 술로 세월을 보내고 계십니다.

하루하루 슬픔과 고통속에 사는 유족들을 찾아와서
어떻게 그런 말들을 뻔뻔하게 하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혹시 유해물질이 없는지 투명한 역학조사를 하고
책임있는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해야 하는게 당연한 대기업의 자세인데
오로지 없던 일로 덮으려고만 하고,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모습에 저희 가족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오빠가 아플 때 삼성은 보험이 적용되는 일부의 치료비만을 지원해줬습니다.
신약을 많이 썼는데 그것은 모두 비보험이어서 고스란히 저희 가족의 부담이었고,
갑자기 급하게 입원을 해야 하는 때가 많았는데
보험이 되는 6인실에는 매번 자리가 없어서
하루에 몇 십만원씩하는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1인실, 2인실 병실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을 살리려고 생업도 뒷전으로 하시고
병원 의자에서 쪼그려 주무시면서 부모님께서 교대로 밤새 오빠 옆을 지키셨습니다.

지금도 힘겨운 병마와 싸우는 많은 피해자들과 악몽같은 나날을 보내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삼성은 아픈 피해자들이 병원비 걱정없이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치료비 지원을 아까지 말아야 합니다.

또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들에게는
진심어린 사과와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합니다.

삼성전자는 또 사상최대의 실적을 냈다고 합니다. 그 실적 뒤에는
묵묵히 땀흘린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삼성은 며칠 전 탕정사업장 이름을 디스플레이 씨티로 바꾸었습니다.
기숙사에 LCD TV를 설치하고, 산책로를 만들고,
사원아파트를 추가분양해서 사원들의 자부심을 높인다고 합니다.

저희 오빠는 사원아파트를 분양 받았지만 거기에서 몇일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사원들을 위하는 길인지 아셔야 합니다.
 
삼성은 이미지관리 그만하고 유해요인들을 빠짐없이 공개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또한 노조설립을 방해하는 행위를 멈추어야 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은 회사편이 아닌 노동자들의 편이 되어
인정할 것은 빨리 인정해야 합니다. 

노동부는 반도체뿐 아니라 LCD에 대해서도 집단역학조사를 실시해서
더이상의 죽음을 막아야 합니다.

저희 오빠같은 안타까운 죽음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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