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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0-28 10:10
: 삼성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시도의 역사1)
 글쓴이 : 삼성일반노조
조회 : 6,053  
   삼성노동자들의 조직건설 역사.hwp (54.0K) [32] DATE : 2010-10-28 10:10:46

‘인간존중’ 삼성재벌 ‘무노조’ 전략의 실제

: 삼성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시도의 역사1)


조돈문(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I. 들어가는 말: 삼성의 ‘인간존중’과 무노조 현상.


재벌그룹 삼성에는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정상적 활동을 하는 노동조합을 찾을 수 없다. 왜 재벌그룹 삼성 계열사에는 노동조합이 없을까? 삼성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노동조합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일까?

재벌그룹 삼성이 스스로 규정하는 자신의 경영철학 핵심에는 ‘인간존중’이 있다. 삼성은 “삼성 경영철학의 최우선 순위는 ‘인간존중’” “삼성의 사회적 존재 이유이자 경영활동 방향을 결정짓는 경영철학은 거창한 구호가 아닌 ‘인간존중’에서 출발합니다”며 인간존중 경영철학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측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인간존중 경영철학은 “인간존중의 틀은 작게는 삼성이라는 배가 제대로 항해할 수 있도록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조직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존중이고 크게는 고객, 즉 인류 전체에 대한 존중입니다”로서 ‘조직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한다1).

삼성 SDI는 2000년 12월 28일 노동부로부터 “신노사문화 대상”을 수상했으며, 이는 대기업부문 대통령상으로서 최고의 상이었다. 노동부 관계자에 따르면󰡒열린경영, 지식근로자 육성, 공정한 성과보상, 작업장 혁신, 노사 관계 개선, 종업원 만족제고 등을 심사한 결과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노사공동체를 형성한 기업으로 이들 6개 기업을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2).  삼성SDI는 2003년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에서 “상장제조업체 249개 중 대상 및 전기전자 업종 최우수기업”으로 경제정의기업상을 수상했다. 경실련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을 선정하는데 있어 7대 평가항목인 ①기업활동의 건전성 ②기업활동의 공정성 ③사회봉사 기여도 ④소비자보호만족도 ⑤환경보호만족도 ⑥종업원만족도 ⑦경제발전기여도”(경실련 2003)였으며, 삼성SDI는 이러한 평가기준에 있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삼성SDI가 신노사문화 대상과 경제정의기업상 등 노사관계와 사회정의 실현에 있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 정부와 유력 시민단체에 의해 평가받는 것은 ‘인간존중’을 경영철학의 핵심으로 천명한 재벌그룹 삼성 계열사로서 이상할 것은 없다. 삼성SDI는 스스로도 기업의 사회적책임성 수행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기업이다. 삼성SDI는 2003년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행하였다. 삼성SDI는 2003년 보고서에서 “‘GRI 2002 지속가능보고서 가이드라인’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삼성SDI 2003: 2)고 밝히고 있고, 2004년 보고서에서도 “국내최초로 2003년도에 GRI 가이드라인에 근거하여 지속가능성보고서를 자발적으로 발행하였습니다”(삼성SDI 2004: 75)며 선도적 지위에 대한 자부심을 표명했다. 삼성SDI는 “경제, 환경, 사회의 triple bottom line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삼성SDI 2004: 2)며 사회적 책임성의 핵심인 “상호신뢰하고 협력하는 생산적인 노사관계”(삼성SDI 2004: 65)를 실천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존중’ 경영철학의 기치 아래 신노사문화 대상과 경제정의기업상을 수상하고 기업의 사회적책임성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재벌그룹 삼성계열사들에 노동조합이 없는 것은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처럼 보여진다. 그것이 삼성측의 설명이기도 하다. 뷰라워이(Burawoy 1985)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를 전제적 지배와 헤게모니적 지배로 양분화하여, 전자를 강제에 의한 지배, 후자를 노동자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지배로 정의한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동원하는데 사용되는 자원은 통상 조직론에서 언급되는 물리적 강제력, 물질적 보상, 도덕적 동의이다(Etzioni??). 이러한 이론적 틀에 비추어 보면 삼성의 무노조상황은 노동자들이 삼성 자본의 지배에 도덕적으로 동의하여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조합 결성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재벌그룹 삼성계열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인가? 노동조합 결성 시도가 없었다면 삼성의 무노조상황은 노동자들의 자발적 선택에 기초한 헤게모니적 지배를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결성 시도가 있었다면, 그리고 진정성이 있었다면 삼성의 무노조상황은 노동자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강제된 선택임을 반영하는 것이다. 노동조합 결성 시도가 있었다면, 왜 실패했는가? 어떻게 재벌그룹 삼성은 무노조 전략을 관철시키고 있는가, 얼마나 ‘인간존중’ 경영철학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관철시키고 있는가? 이른바 민주화가 이루어진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시기별로 편차는 없는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변을 얻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그러한 작업을 통하여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인간존중’ 경영철학과 무노조 상황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II.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노동조합 현황과 조직 시도 역사


1. 삼성그룹 노동조합 조직 현황.


현재 삼성그룹 계열사들 가운데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는 곳은 삼성그룹이 인수하기 전에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던 삼성생명(1989 동방생명 인수, 민주노총 소속), 삼성증권(1992 인수, 민주노총 소속), 삼성정밀화학(1994 한국비료 인수, 한국노총 소속)으로서 삼성그룹 인수 이후 노동조합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지만 노동조합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3). 대부분의 그 외에도 삼성화재, 삼성중공업, 호텔신라, 에스원 등에도 노동조합이 신고되어 있으나 조합원 규모가 작은 곳은 3명, 큰 곳도 40명 이내로서 노동조합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주로 노동자들의 자발적 노동조합 설립 신고 직전에 노조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신고된 유령노조4)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삼성계열사들은 유령노조마저 신고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노동조합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에도 <표 1>처럼 노동조합 결성 시도는 많았지만 노동조합 설립에 성공하여 정상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경우는 전무하다. 거의 모든 노동조합 결성 시도들은 회사측과 공권력의 탄압 혹은 회류로 노동조합 설립에 실패했거나 설립된 다음 와해되었거나, 회사측이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악용하여 정부당국의 협조로 어용노조를 선제등록함으로써 노동조합 설립 신고가 저지되며 노동조합 조직화가 포기되는 것으로 끝났다.


<표 1> 삼성계열사 노동조합 설립 시도 및 설립 신고 연표.

회사명

노조설립일

비고

삼성생명

62.12.31

인수전 노조존재(동방생명 1989 상호변경)

삼성증권

83.6.13

인수(92)전 노조존재

삼성화재

87.11.30

유령노조(안국화재 1993 상호변경)

중앙일보

87.12.1

자체적 결성

삼성중공업

88.6.3

유령노조(96.6.28 대법원 판결)/ 중장비 1998 볼보 양도/ 발전설비 1999 한국중공업 양도

삼성지게차

88.11.26

11.26(설립신고) 6.7결성; 유령노조(1998 클라크에 양도)

삼성정밀화학

 

인수(94)전 노조 존재(한국비료)

창원 삼성중공업

1997

유령노조 선제 등록

삼성SDI

1997-2001

수차에 걸쳐 노조결성시도 탄압으로 실패: 수원(97, 99.12, 00.10) 울산(98.10, 01.12)

신세계백화점

1998.10.9

신세계 노조 결성

에스원

00.5.27

유령노조(선제등록)

삼성코닝

00.10

아텍엔지니어링 사내기업노동자 설립실패(유령노조 선제등록)

에스원

01.04

노조설립 무산(유령노조 존재)

삼성그룹노동조합

01.08

초기업단위, 01.09 대구시 직권해산시킴

삼성캐피탈

01.08

회사탄압 무산

아르네삼성(광주소재)

2002

탄압으로 사직

호텔신라

2003.3.24

지도부 행방불명, 유령노조 선제등록

삼성일반노동조합

2003.2.6

삼성일반노동조합 건설 설립필증 교부, 8.12 인천시청 직권취소(근거: 해고자 노조 가입 규약개정 불법)

삼성프라자(경기분당)

2003.9.5

노조 설립필증 교부(이후 탄압으로 노조설립 자진 취하)

한국항공우주산업(경남사천)

2003.9.25

노조 설립, 조합원 1000여명 가입(삼성재벌이 대주주)

삼성전자

2004.5.25

노조설립신고서 접수, 몇일 후 노조설립 취소함

금속노조 가입

2004.8.9

수원 삼성전자 홍두하, 삼성 SDI 강재민 등 총 6명 ⇒ 2004.8.16-9.9 사이에 모두 탈퇴함(협박, 금품제공);

* 자료: 김기원(1996), 노민영(1995), 김성환․이정미(2002), 삼성일반노조

  (http://www.samsunggroupunion.org/), 삼성해복투(http://www.outsamsung.net/) 등.


2. 삼성계열사 노동조합 결성 시도: 시기 구분.


삼성그룹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투쟁은 시기별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특히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1997년 말 경제위기 발발을 분기점으로 하여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87년 이전 노동조합 결성 시도가 산발적으로 전개되던 시기이며, 두 번째 시기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함께 노동자들이 보다 조직적으로 추진하지만 체계적 준비 없이 투쟁을 전개하는 시기이고, 세 번째 시기는 1997년 말 경제위기 이후 삼성그룹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압박 하에서 연대의 틀을 갖추며 전국적인 구심점을 형성하여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하는 시기이다.


<제1기, 1987 노동자 대투쟁 이전>

삼성그룹 계열사들에서 삼성자본에 맞서 투쟁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시도는 1950년대 제일제당 노동자들의 농성투쟁에서부터 시작되어, 1960년 6월 제일모직 대구공장, 1973년과 1977년 제일제당 김포공장에서 전개된 바 있다(삼성해복투 2000). 이러한 초기의 산발적이고 간헐적으로 전개되었던 노동조합 결성 시도들은 노동조합 결성에 성공하기도 했으나 계열사들에서 동원된 구사대와 조직폭력배들의 폭력행위와 회사측의 관련자 해고조치들로 노동조합은 와해되었다.

<제2기, 1987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과 노동조합 결성 시도가 보다 조직적으로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시기부터였다. 19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 물결 속에서 삼성그룹 노동자들도 노동조합 결성을 위해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삼성중공업과 삼성전관(현 삼성SDI)을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5).

삼성중공업의 경우 1987년 8월 노동자 대투쟁 물결이 울산과 창원을 중심으로한 남해안 산업벨트 지역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창원2공장 노동자들은 구사대 폭력에 맞서며 노동조합 설립총회를 개최하고 창원시청에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으나, 이미 하루 전날 다른 노동조합 설립신고서가 접수되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는 반려되었다. 이듬해인 1988년 4월 거제조선소 노동자들도 노동조합 결성 집회를 개최하고 거제군청에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접수하려 했으나 한발 앞서 회사측의 노동조합 설립신고서가 접수되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 신고는 거부되었다. 당시 노사협의회 위원이었던 최석철이 회사측에서 제출한 노동조합 설립신고서의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되어 있었으나, 당사자는 서류를 만들지도 않았고, 노동조합 설립신고서가 접수되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같은 해 6월 한국노총 금속연맹의 협조를 받아 다시 노동조합 설립 시도를 했으나, 역시 하루 먼저 도청과 시청에 노동조합 설립신고서가 접수되어 있어, 노동조합 결성 시도는 또다시 실패하게 되었다. 이처럼 1987년 8월부터 시작하여 1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전개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 시도는 회사측의 한발 앞선 유령노조 설립신고서 접수로 좌절되었으며, 이처럼 회사측의 노조설립 저지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복수노조를 금지하는 노동조합법 규정뿐만 아니라 행정관청의 협조가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993년 10월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으로 당선된 이재용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회사측은 폭행과 감금을 통해 전국노동자대회 참여 등 외부세력과의 연대를 차단하고 금전적 보상을 통해 회유하려했으나 실패하고, 수원 발령을 거부하자 이재용을 1997년 4월 징계해고시켰다. 

삼성전관 노동자들 역시 노동자 대투쟁 물결 속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삼성전관 노동자들은 부산사업장과 수원사업장에서 각각 1987년 8월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투쟁을 시도하였다. 수원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사전에 발각되어 파업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했으나, 부산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열흘 정도 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부산사업장의 경우 핵심 인물들은 강제로 사직당하고 노사협의회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타협하면서 파업투쟁은 끝났다. 한편 수원사업장의 경우 1989년 초 노조결성을 위한 소모임 활동이 추진되었으나 역시 발각되어 수포로 돌아갔고, 다시 1991년 4월 노동조합 설립 등을 요구하며 3일동안 파업투쟁을 전개하였으나 노사협의회 운영방식 개선 등 요구조건들을 관철시키는 대신 노동조합 결성은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파업투쟁 이후 노사협의회 근로자측 위원장 직선제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고, 핵심 활동가들은 징계조치 당하거나 구속되며 조직력은 와해되었다.


III. 삼성그룹 계열사 노동조합 결성 시도 및 결과.


경제위기 이후 삼성그룹 계열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 시도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경제위기와 함께 추진되기 시작한 구조조정 조치로 인하여 노동자들은 평생직장 개념을 잃고 삼성측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는 한편 이해관계의 적대성을 깨닫게 되어 더 이상 삼성측의 호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직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삼성 계열사 노동자들의 불만과 노동조합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단위 사업장을 넘어선 연대의 망과 전국적 투쟁의 구심점이 형성되면서 과거의 노동조합 조직화 시도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한단계 더 체계화된 노동자들의 조직화 시도도 거의 모두 실패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제3기를 중심으로 재벌그룹 삼성계열사 네 곳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먼저 신노사문화 대상과 경제정의기업상을 수상한 삼성SDI의 수원사업장과 부산사업장, 재벌그룹 삼성의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의 수원사업장, 그리고 재벌그룹 삼성계열사들의 노동조합 결성 저지를 위해 자주 동원되는 삼성 에스원의 노동조합 결성시도를 분석한다.


1. 삼성SDI 부산사업장의 노동조합 결성 시도들.


삼성SDI 부산사업장은 1996년부터 이미 경영혁신과 자동화 등으로 구조조정이 시작되었으며, 경제위기가 발발하면서 구조조정은 더욱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1998년 장기근속자를 중심으로 희망퇴직을 강제하여 700-800명을 감축하였고 상여금 감액 및 체불, 각종 복지혜택 축소 등을 실시하였다. 1997년과 1998년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당선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송수근은 동료 노사협의회 위원 14명과 함께 3회에 걸쳐 외출증을 끊어 사내기업에 대한 조사를 하는 한편 민주파 노사협의회 위원 7명과 함께 서울본사로 가서 회사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항의하였다. 송수근과 함께 움직였던 노사위원들은 모두 정상근무처리되었지만, 송수근만은 무단결근, 무단외출을 사유로 1998년 9월 24일자로 징계해고되었다6). 송수근의 경우, 회사측은 “평생 노사위원 하는 것도 아닌데, 이제 사원들을 위해 할만큼 했다... 이제 모르는 척 좀 해주라. 관리자 자리하나 줄테니 나를 좀 도와달라” “회사가 추진하는 제도를 계속 반대하면 가만두지 않는다”(송수근 2004; 삼성경기공대위 2005)는 등 회유와 협박을 계속하였으나 구조조정 반대의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발견하자 동료 노사위원들은 빼고 송수근만 해고조치한 것이었다.

송수근은 민주노총 등과 연대하여 10월 30일 회사앞에서 부당해고 조치에 대한 항의집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준비하던 중 집회 전날 회사 직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동해안으로 끌려가게 되어 집회에 참여할 수 없었다7). 이후에도 회사측은 송수근의 회사 정문 앞 1인 시위를 저지․방해하기 위해 폭력과 소음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설립의 뜻을 갖고 송수근과 교류하던 노동자들의 경우, 윤양근은 수원으로 전보배치된 다음 말레이시아로 발령났고, 이만신은 중국 천진으로 발령났는데 2년 정도 아예 업무를 주지않기도 했으며, 김일경과 오충언은 3개월간 중국 출장, 장호래는 감금-폭행 뒤 한달간 말레이시아 강제출장을 당했으며, 집단폭행 당하는 사례들도 발생하였다.

2000년 1월 5일 노사협의회 위원 4명이 체불임금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울산 지방노동사무소를 방문하고 나오는 길에 회사측 관리자들과 세콤(현 에스원) 등에 의해 강제감금되어 있다가 8일 뒤에 풀려난 일도 있었다. 한편, 1998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삼성SDI 출신 노동자 2500여명이 사내하청기업 노동자로 전환되었고, 이들은 삼성의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임금보장을 약속받았었다. 하지만 동일임금 보장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사내기업 노동자 11명은 2000년 3월 11일과 21일 연이어 모임을 갖고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의견을 모아가자 삼성SDI는 노무팀을 동원하고 사내기업 사장들에게 이 모임을 해체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내기업 사장과 간부들은 류철규, 명승호 등 사내기업 노동자들을 “송수근을 만나지 마라” “사내기업 모임에 참석하지 마라”(삼성경기공대위 2005)고 협박하며 납치, 감금, 폭력을 행사하여 사직서를 쓰게 하였다.

2001년 12월 22일 저녁 삼성SDI 부산사업장 반장 최영주는 회사측 김재윤반장, 정승용부장과 이창건노무과장에 의해 납치되었다8). 최영주는 삼성SDI의 강제적 구조조정과 노동자탄압을 규탄하고 노동조합 건설을 호소하는 유인물을 작성하여 삼성SDI 사내와 노동자 밀집지역 아파트단지에 배포한 바 있고, 그로 인해 회사측에 의해 미행, 감시당하고 있던 터였다. 최영주는 납치팀들로부터 도주하려다 절벽에서 떨어져 양쪽 발목과 허리에 전치4주의 큰 부상을 입었으나 이창건노무과장 등은 병원치료를 허용하지 않고 최영주를 밀양, 중산리 등지로 끌고 다녔다. 이들은 “죽인다” “생매장시킨다” “확 끌어묻어버린다”(최영주 2001)고 협박하며 홍보물 배포와 관련된 동료 노동자들의 이름을 추궁하였다. 결국 최영주는 24일날 회사측이 요구하는 <표 2>와 같은 내용의 서약서를 써주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표 2> 최영주가 서명한 서약서 내용.

일자: 12월 24일

사번: 8703956

성명: 최영주

상기 본인은 유인물을 작성하고, 배포한 것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에 가담하지 않고 노사문제에 대해서도 가담하지 않고 문제인물들과도 만나지 않겠습니다.

문제인물 장호래, 이광형, 제해천 등.

위 사실을 어길 시에는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 자료: 삼성일반노동조합(2004a: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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