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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25 13:18
신라의 달밤-----한겨레 21
 글쓴이 : 삼성일반노조 [211.♡.207.220]
조회 : 6,196  
신라의 달밤, 노조의 참패

신라호텔 노조 설립 주도하던 간부들 돌연 잠적… 악명 높은 삼성의 무노조 신화는
계속된다



지난 3월24일 오후 호텔신라 직원인 임장호씨 등 4명은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노동조합 결성총회를 열었다. 2월 초부터 민주노총 서울본부쪽의
도움을 얻어 비밀리에 노조 설립을 준비해왔던 이들은 그렇게 마지막 절차를
끝냈다. 노조 임원 2명은 다음날 오후 민주노총 간부와 노동 전문지 기자를
대동하고 서울 중구청을 찾았다. 그리고 오후 4시45분께 노조설립신고서를
무사히 접수시켰다.


노조설립신고서 접수 사흘 뒤 취하


이 소식은 재계와 노동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노조 정책을
고수해온 삼성의 계열사에는 지금껏 노조다운 노조가 하나도 설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텔신라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녀 부진(33)씨가 기획팀장을
맡아, 사실상 경영을 이끌고 있다. 이씨가 2001년 8월 호텔신라에 들어온 뒤
사장이 두번씩이나 바뀌는 등 경영이 썩 순탄하지 못했던 점도 호텔신라
노조에 더욱 관심을 쏠리게 했다.

그러나 노조설립 신고 사흘 뒤인 28일 오후 노조 간부들은 노조설립
취하서를 중구청에 다시 냈다. 직원들에게 노조 설립을 알리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의욕에 차 있었던 그들이 그렇게 빨리 생각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흘 동안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났던 것일까

노조설립 준비를 도왔던 민주노총 서울본부 관계자는 “삼성이 노조를
호락호락 인정하리라고는 애초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그들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노조 설립 신고를
마친 직후, 회사 관계자들은 노조 간부들의 휴대폰으로 계속 전화를 걸어
면담을 요청했다. 노조 간부들은 이날 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회사 간부들을
피했다. 그리고 26일 아침 출근했다. 그러나 이후 민주노총쪽과 언론은
이들과 더 이상 접촉할 수 없었다. 임장호씨의 휴대폰은 켜져 있었으나 받지
않았다.

이들은 26일 저녁부터 아예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27일
“(임씨 등은) 회사에 나오고 있다. 노조설립필증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설립 신고를 취하하도록 우리가 설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조 설립 신고를 취하한 이후에도 이들의 행방은 묘연하다. 여전히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회사쪽은 “29일부터 휴가를 낸 상태”라고
밝혔다. 한 노조 간부의 부인은 “집에는 당분간 못 들어간다는 전화를 받았다.
여행 간다고 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이들의 안부를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
듯했다.

이들이 잠적한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쪽은 “이들이 노조를 만들려는 의도가
처음부터 순수했던 것 같지 않다”라며, 회사쪽의 설득에 스스로 노조
설립을 포기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실패한
이들은 “뻔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동안 삼성이 해온 노조 설립 방해의
역사를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삼성 계열사 해고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삼성
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은 “삼성 계열사에는 ‘면담 제도’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고 말했다. 노조 설립을 시도한 당사자들을 회사쪽에서 이리저리
데리고 돌아다니며 설득과 회유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설득과 회유지
납치라고 그는 주장했다.



실제 그런 일이 적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12월 삼성SDI
울산공장에서 회사쪽의 구조 조정 추진을 비난하는 인쇄물을 뿌렸던 최영주씨는
회사 간부 2명에게 이끌려 승용차를 탄 뒤 이틀 동안 경남 일대의 식당과
콘도로 끌려다녔다. 그는 당시 딸의 휴대폰에 “아빠 납치된다. 경찰에
신고하라”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냄으로써 확실한 증거를 남겼다. 최씨는
회사 직원들의 손에서 어렵게 풀려난 뒤 쓴 자술서에서 “유인물 건에 대해
자백을 강요하며 끌고 다녔다”고 밝혔다. 1999년 말에도 노조를 결성하려던
삼성SDI 직원 4명이 “회사쪽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사직을
강요받았고, 결국 회사를 떠나는 대가로 희망 퇴직 위로금의 4배 이상인
6천만~8천만원을 받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삼성의 이런 전력은 이번에
호텔신라에서

노조 결성을 시도한 임씨 등이 자발적인 의사로 노조 설립을 포기한 것이라고
믿기 어렵게 만든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유령 노조’ 등장


복수 노조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을 악용한 이른바 ‘유령 노조’의 설립
또한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임씨 등이 노조설립신고서를 접수시키기
직전 서울지방노동청에는 또 하나의 노조설립신고서가 접수됐다. 물론 회사쪽은
“누가 설립 신고를 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쪽은 복수
노조 금지 조항을 악용한 회사쪽의 전형적인 노조 설립 와해 공작으로 본다.
회사쪽이 아니면 그런 일을 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설립 신고가 급조된
흔적도 많다.

노조설립신고서는 일반적으로 구청에 접수하도록 돼 있다. 다만 사업장이
두개 이상의 시·도에 걸쳐 있을 때는 지방노동청에 접수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지방노동청에 접수된 노조설립신고서의 조합원들은 모두
서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서울지방노동청은
노조설립신고서를 중구청으로 다시 내려보냈지만, 임장호씨 등에게는 먼저
접수된 노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과거에도 삼성 계열사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려고 할 때마다 한발 앞서
유령 노조가 설립돼 번번히 고배를 들어야 했다. 2000년과 2001년 삼성에스원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했을 때, 그리고 2000년 12월 수원 삼성코닝 사내
기업 노동자들이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할 때도 유령 노조가 몇분 앞서 설립
신고서를 제출해 결국 신고 필증을 받지 못했다. 어떻게 그렇게 한발 앞서
유령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것일까



삼성 해고자들이 1998년 삼성코닝에서 입수한 회사 극비 자료는 노조 설립
시도가 있을 경우 대응책을 매우 상세히 담고 있다. 이를 보면, 삼성쪽은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노조설립신고서가 접수되는 관공서들에 직원들을
상주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자료는 노조 설립 정보를 미리 입수하지 못한 경우,
‘CC(수원시청) 근무자’가 신고서 접수를 실력으로 저지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접수를 실력 저지하지 못하는 경우 서울, 구미에서 먼저
노조설립신고서를 접수하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는 삼성에서 왜 그렇게 자주 유령
노조가 만들어지는지를 암시한다. 자료에는 이와 함께 노조설립신고서를
접수한 사람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고, 접수자에 대해 그림자(미행)를 실시하며,
접수자 및 관련 인물 해고 방안을 마련하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노동계 차원의 ‘삼성 특별 대응 기구’ 주장도


삼성이 노조 설립을 가로막는 데 악용하는 노동법의 ‘복수 노조 금지’
규정은 애초 2002년부터 풀리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2001년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뒤로 미루는 조건으로 복수 노조
금지도 2006년 말까지 그대로 두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
일반노조쪽은 “이번 사태를 거울 삼아 이제라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차원에서
삼성에 대한 특별 대응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한다.

신라호텔에서 노조 설립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잠적함으로써, 이번 노조 설립
파문의 진상은 당분간 파악하기 어렵게 됐다. 삼성의 무노조 정책도 악명
높은 신화를 더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현재 삼성의 계열사에는
‘한마음협의회’ ‘노사협의회’ ‘노동자협의회’ 등 다양한 형태의 노사 협의
창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조직은 노동조합처럼 활동을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노조가 근로자들에게 반드시 이익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가 노동자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판단할 일이다. 노사관계에 관한 한,
삼성의 시계는 여전히 1980년대를 가리킨 채 죽어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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