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에 얽힌 눈에 띄는 뉴스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이건희 회장이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이광재 강원도지사를 승지원으로 초청하여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는 소식이다. 이 자리에는 이광재 지사뿐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및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여러 명이 참석했다 한다. 만남의 이유는 동계올림픽 유치라고 하지만 도지사에 당선되고도 비리혐의로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이광재 지사에게 절묘한 시점에 우아하게 힘을 실어주는 ‘회장님’의 정치력은 남다른 데가 있다. 우리는 이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도민의 의지 표현으로’ 도지사에 선출되고도 정상적으로 집무에 임하지 못하고 있는 이광재 지사가 회장님의 음덕으로 직무정지에서 벗어나는 날을 조용히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건희 회장이 이처럼 이광재 지사를 애틋하게 돌보는 것은 그가 여야를 초월하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진정한 권력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지만, 그 이상의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 오래 전 일은 접어두더라도, 지난해 12월2일 당시 이광재 의원은 민주당 강원도당 위원장 자격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이건희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사면 복권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이후 1주일 뒤 강원도 출신 여야 국회의원 전원이 공식적으로 이건희 사면복권을 검토해줄 것을 법무부 장관에게 건의했고, 이 건의를 받아들여 우리가 잘 알듯이 연초에 특별사면이 이루어졌다. 이번에 이건희 회장이 이광재 지사를 초대해 힘을 실어준 것은 그 일에 대한 개인적인 보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단한 의리 아닌가?

최근 결성주도 직원 경고받아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지 않으면 나라가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반MB연대에 참여해서 후보사퇴하지 않는다고 진보신당 후보들을 비난했던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지지자들은 이건희와 이광재의 회동을 보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이번에도 서울 은평을 보궐선거에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사회당의 금민 후보를 주저앉히고 민주당이 공천한 장상 후보로 반이재오 단일화를 해야 하는 건가? 부질없는 짓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삼성당이고 이건희당이라는 점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이것은 북한에도 조선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이라는 야당이 있지만 모두 김정일당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왜 삼성이면 안되고 이건희면 안되는가? 그것도 북한을 생각하면 된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국가 위에 당이 있듯이 자본주의 국가인 남한에서는 국가 위에 삼성이라는 기업이 있다. 북한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법을 초월하듯이 남한의 이건희 회장도 법 위에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동자의 천국’인 북한에 노동조합이 없듯이, ‘최고의 복지를 자랑하는’ 삼성에도 노조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지난주 대전의 삼성SDS 최아무개 차장이 노조를 만들 결심으로 사내 통신망에 노조설립을 촉구하는 e메일을 보냈다 한다. 메일은 순식간에 삭제되었고 최 차장은 회사 메일을 다시 한번 업무 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면 처벌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은 후, 대전에서 서울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삼성에 노조가 없는 이유는 북한에 노조가 없는 까닭과 같다. ‘노동자의 천국’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것은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한때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남북한이 이렇게 나쁜 것이라도 닮아 가면 통일이 빨라질까?

불순한 ‘무노조’ 발상 아닌가
1980년대 초반 아직 공산국가였던 폴란드에서는 자유노조라는 것이 생겨 체제에 도전했을 때, 한국의 언론들은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공산국가에서 노조도 자유롭게 만들 수 없는 노동자의 처지를 비판했었다. 그런데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였던 바웬사는 대통령이 되었는데, 처음부터 자본주의 국가였던 한국에서 아직도 노조설립이 불가능한 기업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삼성 불매를 말하면 무엇을 위해서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자유로운 노조의 설립을 위해 삼성을 불매해야 한다. 노조설립을 추진하는 최 차장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면서, 다시 한번 이 땅의 모든 깨어 있는 영혼들에게 무엇보다 삼성 카드, 삼성 보험, 삼성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멀리할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