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후원회'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또 누군가에게는 친근한 이름이다. '양심수후원회'는 사회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하다 부당하게 구속된 양심수들의 석방과 후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또는 사회의 부조리와 맞서 싸우다 구속 수감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접해 봤을 이름이다.

지난 1989년 창립된 양심수후원회는 올해로 창립 22년째를 맞는다.

'양심수후원회'는 창립 10년만에 260여명의 장기구금 양심수 모두를 석방해냈고, 그 이후로는 지금의 서울 봉천동에 '만남의 집'을 마련해 무연고 출소자들이 생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보건의료단체들과 함께 양심수들에 대한 종합검진과 구강검진, 보철 치료 등을 해왔다.

1992년부터는 장기구금 양심수 송환운동을 벌여 93년에 이인모 선생을 2000년 9월 2일에 김선명 선생 등 63명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 송환추진 운동을 주도해 왔다. 1차 송환 이후에는 송환희망자 30여명의 염원을 담아 2차 송환촉구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기자가 만난 '만민보'의 주인공은 양심수후원회의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국장 임미영씨.

지난 달 중순 서울 봉천동에 위치한 '만남의 집'에서 임미영씨를 만났다.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전까지 그는 전업 주부였다. 군대에 간 아들이 있는 어머니가 단체의 사무국장으로 일을 하기란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다.

임미영씨가 후원회와 인연을 맺은 게 90년대 초반이니 벌써 15년여 전의 일이다. "행사나 일이 있을때 나가 회원들을 취재하고 소식지에 글을 올리는 정도의 활동이 전부였다"고 말하는 임씨. 우연히 시작하게 된 사무국장 일이 벌써 4년째다.

"권오헌 전 회장님의 부탁을 받고 '긴급 투입'된 건데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2000년 6.15공동선언 직후 북으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들, 국가보안법 문제로 분단과 통일이라는 화두를 던진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 재판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장기수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그 전에도 알고는 있었죠. 저는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경험하진 않았고 그냥 평범한 시민이었어요. 후원회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면서 장기수 선생님들에 대해 더 알게 되었죠. 박정희 독재시대에 20대 청소년시기를 거친 세대들이라 자연스레 이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외부활동을 못했지만 심정적으로는 꾸준히 응원했었죠. 우리 세대들이 좀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남과 북의 통일문제만 해도 관심이 많지만 그걸 어떻게 표출하진 못하고 마음 속에 쌓아놓는 경우들이 많아요."

임씨는 비정향장기수 김선명 선생도 기억하고 있었다.

"후원회 기행행사가 있을 때 뵙긴했는데 선생님을 후원한다거나 하진 못했어요. 제 삶에 대해 사색할 시간들을 주신 분이죠. 책을 통해 혁명이나 운동을 접하긴 했지만 인간이 신념을 갖고 지난한 감옥생활을 이겨냈다는 게 참 경이롭다고 생각했어요. 신념이 꺾이지 않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가르침을 주신 거죠."

김선명 선생은 43년 10개월 동안의 옥살이 끝에 지난 95년 8.15특사로 풀려나 북으로 송환됐다.

임미영 국장은 애써 "내 얘긴 쓸 게 없으니 오히려 후원회 활동을 널리 알려달라"고 했다.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당신은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는 질문에 딱히 할 얘기가 없더라구요. 운동을 경험하거나 또 큰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뭘하지 않았다는게 뭔가 나를 가리는 듯 했고, 늘 가림막으로 작용해왔던 것 같아요. 부끄러운 일인데 지금에서야 '양심수후원회 활동가'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죠."



그는 양심수들의 인권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양심수들의 '감옥 생활'이 여전히 열악하다고 말하는 그는 교도소가 아닌 '감옥'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 2010년 정권 하에서의 수감생활을 말한다면 시설이야 예전과 비교해선 안되죠. 그건 마치 자동차를 타면서 마차 타던 시절과 비교해 '지금 정말 많이 변했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지금은 각 교도소 소장에게 재량권을 많이 준 상태에요. 그러다보니 공안수.양심수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느슨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신문을 오려서 준다거나 하는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죠. 안에서는 돈을 내고 구독하는데 이런 식으로 대우를 해서야 되겠어요?"

그는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공안수가 폭력범도 아닌데 알몸 검시를 해서 수치심을 조장할 정도인데, 외부의 관심이 덜한 일반 재소자들의 경우엔 더 심하지 않겠어요. 자신들은 교도소라고 하지만 밖에서 보기엔 여전히 감옥이죠. 재소자들 대부분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범죄자가 된 경우가 많잖아요. 재소자의 권리도 있는데 알 기회도 없고, 재소자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지 않는 것을 두고 소내 인권이 개선됐다고 볼 순 없어요. 전시성 행정은 여전하다는거죠."

양심수후원회는 노동운동, 통일운동을 하다 갇힌 이들에게 영치금이나 책을 넣어주기도 한다. 이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밖에서 연대 활동을 벌여나가는데 아직 부족한 게 많다고 임씨는 말한다.

"90년대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감옥에 가면 그 안에서 많이 성장해서 나오곤 했어요. 밖에서도 함께 싸우며 힘을 주고 말이죠. 최근에는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되는 분들이 많은데 예전에 비하면 안에서의 활동이 없는 편이죠. 그들만의 탓은 아니라고 봐요. 밖에서도 연대해주지 못하고 또 서로간에 인식의 차이도 있고 아쉽죠."

임 국장은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7년형을 구형받고 수감생활 중인 장민호씨 얘길 했다. 함께 구속됐던 3명은 이미 석방됐지만 장민호씨는 아직 3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 석방운동과 연대활동도 벌이길 희망하지만 뜻대로 잘 안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는 '사무국장 답게' 후원회 활동 소개를 빼먹지 않았다. 한달에 한번 있는 정기산행과 든든한 후원자들까지. 양심수후원회 회원들은 시대의 변화에 흔들림(?)없이 묵묵히 후원을 하는 열혈 후원인들이라고 자랑했다. 특히 CMS 후원이 가장 안정적인 밑거름이라고 강조하기도.

"정권이 바뀌든 정세와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회비를 내는 회원들이 후원을 끊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참으로 고마운 일이고 큰 힘이 되죠."

후원인들 중에는 회사원, 진보단체 활동가 뿐만 아니라 지식인, 의사, 공무원 등 그 직업과 계층도 다양하다. 회원들 대부분이 10년 이상 많게는 20년 가까이 활동해 온 이들이다.

후원회가 매달 한번씩 갖는 정기산행도 빼놓을 수 없다. 단순한 친목활동의 차원을 넘어 사회와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자리다.

그런데도 그는 젊은 회원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젊은 사람으로 세대교체가 되면 좋겠어요. 젊은이들이 이일을 하면 장점이 많을 것 같은데 다만 젊더라도 사람들과의 관계의 폭이 넓은 사람이면 좋겠죠."

양심수후원회는 올해로 창립 22년을 맞았다. 목표와 지향이 분명한 단체가 22년간 변질이나 분열 없이 한 길을 걸어 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이요? 그보단 선생님들 만나는 게 큰 힘이 되요. 늘 동지라 불러주시고 통일운동에 전념하게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부족한 점은 다 품어주는 데 정말 큰 힘이 되어 주시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 인생에 큰 좌표를 갖진 못했을 거예요."

그는 2차 송환이 이뤄지길 간절히 희망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로 '송환'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2차 송환을 희망하는 선생님들이 30여분 계세요. 송환이 빨리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 정권 하에선 어떤 희망조차 가질 수가 없네요. 참 안타깝죠. 대부분 80대 고령이시고, 또 고문 후유증들을 앓고 계시죠.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선 어떤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남북관계를 되돌려 놓아서 사람들 마음을 힘들게 하네요."

<김도균 기자 vnews@voiceofpeopl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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