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경영복귀', MB가 시켜준 셈"

"법적.도의적 책임지겠다"더니 스스로 뒤집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 2008년 4월 22일 '국민께 사과 및 퇴진 성명'을 발표하면서 "저는 오늘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아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황제경영의 상징이었던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고 10개 항으로 된 경영쇄신안도 발표했지만 당시에도 닷새 전 삼성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 뒤 나온 이 회장의 회장직 사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실제 삼성은 그해 6월 '경영 쇄신안 후속조치'라며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투자조정위원회, 브랜드관리위원회 등을 만들어 이 회장의 '배후 경영' 체제를 존속했다. 이 와중에 아버지와 함께 당시 최고고객책임자(CCO, 전무)에서 해외고객담당으로 한발 빠져 있던 아들 이재용씨도 지난해 12월 15일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전자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복귀했다.

1심, 2심에 이어 지난해 8월 대법원마저 이 회장에 대해 조세포탈.배임혐의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솜방망이 판결을 내리자 '사면복권→경영 일선 복귀' 시나리오는 본격화 됐다.

삼성 내부에서는 대법원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자가발전'이 시작됐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열린 가전전시회에서 "삼성이 소니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건 이건희 회장님 덕분이다. 오너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삼성이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라고 말해 처음으로 사면론에 불씨를 지폈다.

이후 10월과 11월에 걸쳐 한나라당과 재계는 물론 부처 장관(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나서 이건희 사면론을 적극 설파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1일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명목으로 이 회장을 단독 사면.복권했다.

당초 언론들은 사면된 뒤 이 회장이 바로 경영에 복귀하기 보다는 올해 연말이나 2011년께 복귀를 점쳤다. 그러나 이 회장 사면론을 공개 제기했던 최지성 사장은 새해 초부터 기자들에게 "(이건희 회장을)앞으로 우리가 모시고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해 이 회장이 연내 조기 복귀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 회장 본인이 입을 열었다. 지난 1월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가전전시회 현장에서 이 회장은 '언제쯤 경영에 복귀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멀었다"라고 말해 향후 경영에 복귀를 기정사실화 하더니 두 달 가량 지난 24일 삼성전자 회장자리에 복귀했다.

이 회장의 회장직 복귀에 대해 이건희 일가의 불법 경영과 비리를 비판해 온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삼성이니까 벌어진다는 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예상은 이미 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회장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한 자신의 말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경영권 불법승계 공론화 과정을 지켜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이건희씨가 스스로의 양심을 부정했다"고 말했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퇴진 성명에서 "그 동안 저로부터 비롯된 특검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많은 걱정을 끼쳐 드렸다. 진심으로 사과드리면서 이에 따른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본인의 입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날 삼성 측은 도요타 대량리콜 사태로 충격을 받은 삼성 사장단협의회가 지난달 이건희 회장의 경영복귀 문제를 논의한 끝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글로벌 사업기회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이 회장의 경륜과 리더십 필요하다고 판단"해 복귀를 요청했으며, 이 회장이 숙고 끝에 이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김인국 신부는 이에 대해 "그들 스스로는 그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라며 지난 2008년 이 회장이 퇴진을 발표할 당시는 법원의 1심 판결이 나기도 전이었으며, 오로지 자기 스스로 결정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 누가 그만두라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이제와서 자기 자리에 돌아가겠다는 것은 자기 선택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는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해준 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성환 위원장은 "작년 사면복권의 가장 큰 목적은 처음부터 이 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와 족벌 세습경영을 확실히 완수하는 것이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이건희를 사면하고 세종시 반대급부를 바랬다는 측면에서 결탁을 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인국 신부도 "이건희씨의 회장 복귀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이 대통령의 단독 특별사면"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상법상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은 상장법인의 등기이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사면으로 깨끗해진 이 회장은 법적 걸림돌이 사라져 복귀가 가능해 진 것. 김 신부는 "사면이 형식적으로는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올림픽 유치라는 명목으로 회장직 복귀까지 이어지도록 해준 셈이 돼 결국 대통령이 법원의 판결을 부정하게 된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성환 위원장은 "이 회장의 경영 복귀로 이 나라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임이 다시 한번 증명됐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다"며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시 열심히 싸워야한다"고 말했다.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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