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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19 15:25
뉴스타파 - [민국 100년 특별기획] 전두환과 잔당들… 그들은 잘 산다
 글쓴이 : 뉴스tapa [없음]
조회 : 1,823  
뉴스타파는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학살에 책임이 있는 전두환 측근 77명의 행적과 근황을 추적했습니다. 상당수는 승승장구하며 부유하고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고, 5·18을 왜곡하며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활동중이었습니다. 전두환 잔당 중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1981년 제작된 '자유광주'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전두환 일당과 주류언론이 은폐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국내외에 알린 영상물입니다. 삼엄한 감시를 뚫고 광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자유광주' 제작진을 뉴스타파가 만나봤습니다.

동영상=> https://youtu.be/dFqdspIY__k


■ 진행 : 변상욱 앵커 
■ 출연 : 홍여진 / 뉴스타파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5.18 민주화운동 39주년을 앞두고 전두환 씨와 관련된 여러 보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발포 명령을 부인해 왔던 전 씨의 주장을 뒤엎는 유력한 증언과 증거들이 나오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5.18 광주 학살은 전 씨 혼자서만 자행한 건 아닙니다. 그의 수족 같은 세력들이 옆에 있었습니다. 뉴스타파가 전두환 세력의 지난 40년을 추적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뉴스타파의 홍여진 기자와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홍 기자,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번에 내놓은 기획보도물이 전두환과 잔당들, 그들은 잘 산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전두환과 잔당들, 그들은 잘 산다. 이 전두환 세력을 취재하게 된 계기는 뭐였습니까? 

[기자] 
앞서 잠깐 화면에 나왔지만 올해가 5.18 39주년이고요. 5.18 민주화운동 또 12.12 쿠데타가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올해가 좀 의미 있는 해라고 봤고요. 40주년을 맞아서 어떤 방송을 하면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수 있을까 고민이 좀 팀에서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저희가 사전취재 단계에서 전두환 씨를 비롯한 신군부 세력들이 여전히 너무나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요. 그렇다면 그게 과연 일부만의 일일까. 혹시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닐까 조사를 한번 해 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97년도에 재판이 한 번 있어서 처벌을 한 번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때 처벌과 동시에 군인연금도 다 박탈을 했어요. 그래서 그에 비춰봤을 때는 잘 산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지가 않는데 어떻게 잘 살 수 있었을까, 한번 전수조사를 해 보자고 해서 취재를 시작하게 됐고요. 또 이 전수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만나보면 누군가 1명이라도 40년이 흘렀으니까 미안하다거나 아니면 잘못을 인정한다거나 이런 발언을 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취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앵커] 
그런 기대감으로. 그런데 77인의 명단, 그 77인은 뭘로 선정을 했어요? 

[기자] 
기억하시겠지만 97년도 김영삼 정부 시절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 처벌을 받았던 사람은 15명에 불과했어요. 또 5.18 혐의 같은 경우는 특히 10명 정도밖에 되지가 않았었는데 저희가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해 봤더니 대대장급도 좀 포함을 시켜야 된다. 그 당시에 대대장급은 포함이 안 됐거든요. 당시 고발은 됐지만 대대장급 같은 경우는 단순가담자다 이런 이유로 그때 기소조차 되지가 않았었어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장 부대의 지휘권이 있던 사람들 같은 경우는 책임자로 봐야 한다. 그래서 저희가 이번에 77인을 추리는 과정에서는 대대장급 이상, 현장 진압부대의 지휘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추렸고요. 

또 충정작전이라고 그래서 소위 말하는 5.18 진압 공로로 훈장을 받았던 사람들을 명단에 좀 포함을 시켰고요. 또 그 외 별도로 12.12 쿠데타에 가담했던 인물들 34명도 포함을 시켰습니다. 

[앵커] 
군인이니까 물론 몇 가지의 변수는 있습니다마는 사실 돈을 엄청나게 모을 수 있는 직업은 아니고. 그렇죠? 중간에 또 처벌까지 받고 어떤 사회적인 권한들을 제한까지 받았다면 잘 살기는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정말 잘 살고 있어요? 

[기자] 
이미 제목에서 약간의 언질을 드렸기는 하지만 정말 잘 살고 있더라고요. 물론 저희가 안타깝게도 77명 모두를 조사하려고 했지만 이미 현재 돌아가신 분도 계셨고요. 또 행적이 좀 찾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저희가 최종적으로 행적이 파악된 사람이 47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그들이 80년도 5월 18일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좀 봤더니 47명 중 상당수가 5공과 그 이후 정부에서 고위 관료 그리고 기업인,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현재 거주지를 저희가 확인을 해 봤어요. 왜냐하면 재산공개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까 이들의 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게 또 부동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좀 확인을 해 봤는데 이들 중의 상당수가 서울 강남과 용산 그리고 경기도 분당과 과천지역. 이 과천지역이라 하면 과거 5공시절에 장군마을이라 불리던 장군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있어요. 그 지역의 고급 아파트나 주택에 살면서 아주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취재하면서 보니까 서울에 이렇게까지 좋은 주택이 있었나 하는 곳을 새삼 다시 깨달았어요. 

[앵커] 
그 정도예요? 군인이었고 군인에서 쿠데타에 성공한 뒤로는 기관장도 좀 하고 정부 관료라도 했겠지만 그것도 다 공직인데.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그렇게 돈을 많이 번다? 제일 잘 사람이 누구였어요? 

[기자] 
누구일 거라고 좀 예상을 하십니까? 

[앵커] 
글쎄요. 이럴 때는 차라리 정부 관료나 정치 말고 한직으로 가서 따로 어떤 알짜배기 공기업에 있던 사람 이런 사람 아닐까요? 아니에요? 

[기자] 
그런 사람이 아니고 정말 아쉽게도 정말 군공무원을 하고 국방부 장관을 하고 내무부 장관을 하고 정말 공직의 길만을 걸어왔던 사람이 가장 잘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 아실 거예요. 정호용 씨라고. 

[앵커] 
정호용 장군이? 

[기자] 
그렇습니다. 5.18 광주학살의 실질적 사령관으로 불리고 당시 특전사령관이셨죠. 

[앵커] 
군사력으로는 제일 나름대로 컸던 사람이죠. 

[기자] 
그런데 돈을 그렇게 많이 버셨더라고요. 정호용 씨 같은 경우에는 국회의원이던 당시 금액으로는 100억 원 가까운 재산을 그때 이미 신고를 해서 한 번 논란이 된 적이 있었어요. 육군참모총장 시절에 그러니까 군 핵심요직에 있던 시절에 갖고 있던 정보를 이용해서 부동산 투기를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는데요. 그때 공개됐던 재산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40년을 추적을 해 봤더니 재산이 많이 불어났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변했냐 하면 현재 본인과 가족 명의로 경기도 과천에만 3채의 대저택이 있었고요. 

[앵커] 과천에 저택이 3개. 

[기자] 그리고 대규모 토지 그리고 서울과 강남과 용산, 종로구를 포함해서 전국에 수십 건의 토지와 건물 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좀 확인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 재산을 모두 합해 봤더니 어림잡아 1000억 원대가 있는 재산이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됐습니다. 

[앵커] 
1000억대. 

[기자] 
그리고 아마 다음 자산가도 소개를 해 드려야 될 텐데 허화평 씨 아마 기억하실 것 같아요. 

[앵커] 
허화평 기억하고 말고요. 허문도, 허삼수, 허화평 3허라고 해서 이 사람들이 언론탄압의 주범이었기 때문에 기억을 하죠. 

[기자] 
저보다 생생하게 기억을 하실 것 같은데 저는 이번에 공부하면서 많이 좀 보게 됐거든요. 이분들 돈이 참 많으시던데 5공 설계자라고도 불렸던 허화평 씨가 당시 5.18 보안사 비서실장을 거쳐서 5공 시절에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지냈던 인물인데요. 현재 청와대 인근에 1000제곱미터가 넘는 대저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고요. 압구정로데오거리 아시죠. 거기도 5층짜리 빌딩을 갖고 있었는데 이게 시가로 50억 원대 달하는 건물이었어요. 이런 것도 보유하고 있었던 걸로 확인이 됐고요. 

그런데 이 시점을 좀 보면 특이한 게 로데오거리 빌딩은 80년도에 구입을 한 거고 대저택은 88년도. 그러니까 실세로 이름을 떨치던 시절에 구매한 부동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취재과정에서 만난 인근 주민들이 청와대 인근 주변에 살고 있는 그 인근 주민들이 이 건물은 전두환이 준 거야 이렇게 말씀들을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좀 인식을 하고 있었는데. 

[앵커] 
전두환 씨가 손이 컸다는 얘기는 많이 듣습니다마는. 

[기자] 
다시 한 번 확인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이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취재를 하면서 느낀 것 중에서는 이 사람이 허화평 씨가 현재 미래한국재단이라는 재단의 소장을 맡고 있어요. 대표를 맡고 있는데요. 이 재단도 아까 그 대저택 옆에 있는 청와대 인근에 있는 재단입니다. 여론조사라든지 사회정책연구를 주로 하는 곳이기는 한데요. 이곳을 조사해 봤더니 뿌리가 1983년도에 전두환 씨가 설립한 현대사회연구소라는 곳이 뿌리입니다. 

[앵커] 
그렇죠, 현대사회연구소. 

[기자] 
아마 잘 아실 것 같은데 그때 국민의식개혁을 하겠다고 만들어 진 사회정화위원회 안에 설치된 사단법인이었어요. 그런데 이 사단법인이고 정부출연연구소라고는 하지만 좀 들여다 봤더니 일해재단이라든지 미래재단처럼 기업들로부터 돈을 90억 원이나 걷고 정부출연금 좀 내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재단이었더라고요. 

[앵커] 
얘기를 쭉 듣고 보니까 거리를 지나면서 가졌던 의문. 건물도 참 많은데 이 건물마다 건물주님들이 다 계신다는데 그분들은 참 어디에 사시는 누구이신가 했는데 이런 사람들이 주로 그런 데 속해 있군요. 

[기자] 
맞습니다. 

[앵커] 
아무튼 얘기를 듣고 보니까 5공 비리의 상징이었던 일해재단. 미래재단, 성남쪽에 가면 있던 거. 그다음에 박근혜 정부의 미르, K스포츠재단 이런 것들이 떠오르네요. 

[기자] 
네, 맞습니다. 이때 83년도 당시 이름을 올렸던 재단 이사들의 이름을 들어보면 낯익은 이름도 나오는데요.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때 재단 이사로 이름을 올렸고요. 당시는 현대건설 사장의 명분으로 올렸던 거고 정몽준 현대중공업 사장도 이름이 있었고요. 이것처럼 유력기업인사들이 이사로 참여했던 재단이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재단이 현재까지 쭉 이어져서 최근 10년 넘게 최측근인 허화평 씨가 거의 자신의 것처럼 운영을 하고 계시는데요. 현재는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분당, 판교 등에 막대한 부동산을 거느리고 있는 재단이고요. 연구소라고 하지만. 지난해 기준 자산이 407억 원에 달하는 곳입니다. 결국 전두환 씨의 5공 유산을 그대로 허화평 씨가 물려받아서 현재까지도 이것을 이용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관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기자] 
그런데 문제는 또 이 허화평 씨가 방송에 종종 나왔었어요. 

[앵커] 
방송에도 나오죠. 

[기자] 
나와서는 5.18 희생자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발언들도 좀 했었거든요. 한번 듣고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허화평 /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 희생자가 용서할 때 가장 아름다운 거예요. 늘 가해자만 사과하라, 때론 피해자도 용서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 자신을 가해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앵커] 
허화평 씨는 제 기억으로는 전두환 장군이 보안사령관을 맡고 있을 때 쿠데타를 일으킨 건데 그때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이죠. 비서실장이고 그다음에 혐의가 인정돼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사람이기도 한데, 저렇게. 그런데 용서를 하려면 뭘 잘못했다고 빌어야지 그거에 대해서 용서를 하는 건데 빌지를 않고 있으니까 용서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건데 그걸 가지고 저렇게 자기가 가해자가 전혀 아닌 것처럼 구는군요. 그런데 정말 다들 저러는 건지 다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이렇게 나오는 건지 그래도 뭔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었는지 그것도 궁금해요. 

[기자] 
정말, 정말 그런 소식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77명 가운데 단 1명도 그런 사람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돌아가신 분 중에서 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런 분은 없었고요. 특히나 저희가 최근에 제가 직접 만난 분이 한 분 있어요. 제가 전두환 씨의 최측근 장세동 씨라고 혹시 기억하시는지. 

[앵커] 
제가 장세동 씨 구속될 때 검찰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으니까. 

[기자] 
정말요? 그럼 더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은데. 

[앵커] 
늘 그 007가방을 들고 왔다갔다하고 있었죠. 

[기자] 
지금은 되게 백발이 무성한 분이 되셨더라고요. 이분이 5.18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였고 그리고 전두환 씨의 경호실장을 거쳐서 안기부장까지 했던 분이잖아요. 그를 이제 저희가 좀... 

[앵커] 
뭐라 그러던가요? 

[기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정말 묻고 싶었던 질문 광주에 갔었느냐, 광주에 가서 뭘했느냐라고 했던 답변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고 전두환 씨는 나에게 되게 사랑을 줬던 분이다, 부모와 같은 분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저한테 이런 충고를 하셨습니다. 재미있게들 살아라, 이런 취재 하지 말고 좀 좋은 나라 만들어라 이런 충고를 하시는 걸 보고 좀 다시 한 번 가슴이 아팠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뉴스타파 홍여진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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