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독재 연재(끝) 3부 자본독재 시대, 민주주의의 과제

삼성독재 저자- 이종보- 

삼성권력 80년, 민주주의를 지배하다 

삼성권력의 원흉 제거

삼성권력의 확장 저지

자본독재에 맞서는 시민의 정치  

재벌 문제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에서의 권력 ’ 문제다. 

그리고 그 원흉은 재벌의 소유 지배 구조이다. 

그동안 정부가 비대해진 재벌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근간으로 삼은 것은 공정거래법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재벌 정책의 목표는 크게 소유 구조, 지배 구조, 재무 구조 개선과 경제력 집중 억제 등에 초점을 맞췄다. 

재벌 정책의 수단 즉 상호출자 금지, 출자총액 제한, 채무보증 제한, 금융 •보험사 소유 주식 의결권 제한, 변칙적 상속 및 증여 규제, 불공정 거래 행위 금지 등 다수의 정책 목표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소유 지배 구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삼성 재벌 체제의 핵심 역시 소유 지배 구조였다.  

삼성 총수 일가는 1%도 안 되는 적은 지분으로 수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며 시장의 부를 흡수해 삼성그룹과 총수 일가로 경제력을 집중시켰다. 정부는 이러한 삼성의 소유 지배 구조를 무한정 허용하지 않고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제한했다. 

이를테면 한 기업이 다른 계열사에 출자할 때 총액을 제한하거나, 금융사가 다른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때 의결권을 일정 정도 제한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제한 조치들은 매우 온건한 것으로 정부가 삼성의 소유 지배 구조를 해체하려는 목적으로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부는 일정한 기준을 마련해 그 기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조정만 할 뿐이었다. 이렇게 정부는 총수 일가의 비정상적 지배를 제거하지 못하고 줄다리기를 함으로써 총수 일가와 그것을 보위하는 그룹 총괄 조직이 국가의 법 체계를 농락해 괴물 권력이 되는 일을 허용했다. 

삼성권력은 총수 일가의 소유 지배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법규범과 대립하면서 만들어졌다. 삼성 총수 일가의 권력에의 의지는 경영권 세습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3대 세습을 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편법•불법 행위들이 난무했던 것이다. 

삼성권력은 누구나 따라야 하는 법규범을 따르지 않고 그 위에 군림했다. 

삼성은 예외적으로 대우받으면서 정당한 법 집행도 공공연하게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거래를 조사할 때 삼성은 아예 서류를 탈취해 폐기하기도 했다. 삼성이 법질서를 무시하는 것은 이젠 놀랍지도 않은 일상이 되었다. 

삼성이 무슨 일을 하든 국가기관은 삼성에게 법적 혹은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국회는 국정감사에서 삼성 총수의 편법 •불법 행위를 따져 묻지 않았다. 

정부 관료는 ‘삼성만을 위한 법’을 만들거나 개정했다. 

재판정에서 삼성 총수만큼은 처벌하기 어려웠다. 

삼성은 언론의 비판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국가적 역량이 총집결해 삼성을 보위했다. 

삼성의 권력에의 의지에 국가기관이 종속된 꼴이었다.

 모든 국가기관의 역할은 오직 삼성권력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시장경제를 관리하고 법을 집행하며 감시를 해야 할 국가기관이 자신의 공적인 책무를 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삼성권력은 오직 총수 일가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삼성 총수 일가의 소유 지배 구조를 차단하고 세습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시장경제의 정상화에 그치지 않는다. 그 결정적 이유는 법질서와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권력의 확장 저지 

삼성은 총수 일가의 그룹 전체에 대한 소유 지배 구조를 유지하고 세습하기 위해 정치적 활동을 벌여왔다. 다른 기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불법 정치자금을 권력기관에 제공했다. 

정치적•사회적 연결망으로 국가기관 전체를 촘촘히 얽어맸다.관료, 검사, 판사, 언론인 등의 영입 규모와 질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 결과 국가적으로 삼성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치체제가 작동했다.

그런데 삼성의 정치적 활동은 정치사회에 국한되지 않았다. 삼성은 대중들과 적대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이 삼성권력을 용인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끼쳐 그들이 자발적으로 삼성권력의 의지에 따르도록 만들었다. 결과는 삼성의 내재화로 나타났다. 삼성의 내재화, 그리고 삼성과 동일시를 통해 한국 사회는 삼성과 공동 운명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재벌 개혁과 삼성으로부터의 탈식민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되었다.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 또한 삼성권력의 강력한 도구다. 개발과 성장은 한국 현대사를 지배한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이고 삼성은 그 상징이다. 민주화가 되었지만 사회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개발과 성장 아래 뭉개졌다. 

그에 따라 기업이 추구하는 효율성과 생산성은 사회적 의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논란으로 낙인찍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벌과 삼성의 전횡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 형성과 자본독재를 해체할 정당의 역할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보수정당이 공적 정치 영역을 독점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가 날로 왜곡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정치체제를 개혁해 국민주권을 살아 움직이는 실체로 만들고, 사회와 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하며, 올바른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는 일은 오롯이 시민의 몫으로 남았다. 

자본독재에 맞서는 시민의 정치

삼성 총수 일가의 소유 지배 구조에서 시작된 삼성권력 문제는 삼성 독재, 나아가 자본독재의 문제로 나아갔다. 자본독재가 민주주의를 압살하기에 이른 것이다. 자본독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 문제부터 다뤄야 한다. 

오늘날의 정치적 •사회적 의제가 과연 시민사회의 공공성을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제도 정치를 어떻게 변혁하고, 그 변혁에 맞서는 재벌의 정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초점을 모아야 한다. 

먼저 민주주의 의제 설정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더 이상 형식과 절차의 문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적 부의 분배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양극화를 해소하며, 궁극적으로는 자본과 노동의 심각한 세력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일상적인 해고,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양산, 노조 와해와 탄압은 ‘노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의 와해가 장기 불황이나 저성장 때문이 아니라 기업과 재벌의 탐욕에 원인이 있으며, 그것은 99%에 대한 1%의 계급투쟁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자본독재의 탐욕은 노동을 넘어 시민사회를 휩쓸고 궁극에는 우리의 일상을 삼성과 자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우리 안에 자리잡은 경제성장 지상주의, 경쟁 이데올로기, 일등주의 등 ‘우리 안의 삼성’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이 이미 삼성을 추종하려는 자세를 갖는 한 자본독재를 막을 길은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들을 정치라는 공공 영역에서 의제로 다루고 정책화하기 위해서는 제도 정치에 새로운 균열이 필요하다. 정치세력화한 진짜 민주진보세력이 정치체제의 실질적 민주화를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진보세력이 제도 정치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던 시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지속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보수정당도 경제 민주화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게끔 민주 시민의 정치력을 확보해야 한다. 보수적 정당체제랄 끝내 무너뜨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선거 정치에 국한하지 말고 정 •관계, 법조계, 언론계를 더 나은 민주주의 체제로 바꿔야 한다. 삼성권력의 해체를 기존 정치인들에게 맡길 수는 없다. 선거 제도를 개혁해서 자본 권력에 도전할 정치세력을 키우고 그들이 실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관료 집단과 법조계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그들의 체제’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며, 대안 언론을 키워 공공성을 상실한 기존 언론을 대체해나가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제도 정치를 바꾸려는 노력이 일어나면 삼성권력 또한 자신의 권력 연장을 위한 정치를 격렬하게 펼칠 것이다. 그동안 삼성을 비롯한 재벌 권력은 저성장 혹은 경제 위기를 앞세워 국민을 재벌에 의존하게 만들면서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를 유도했다. 

개혁정부가 집권하면 개혁 정책 방향을 무디게 만듦으로써 새로운 정부의 방향성을 제한하곤 했다. 그리고 정권 말기가 되면 자신이 지지했던 보수정부도 내던져버릴 만큼 냉혹하게, 한편으로는 교묘하게 행동했다. 대통령을 비판하더라도 삼성에 우호적인 정당은 감싸 안으면서 말이다.

따라서 기업의 정치 참여 행위 자체를 제거하는 일은 시민의 정치 공간을 되찾기 위해 꼭 필요하다. 

재벌이 이미 은밀하게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치며 권력화한 현실에서 ‘공식적’으로 재벌에게 정치를 허용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파멸 속으로 밀어 넣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치 권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사회 공공의 문제에 아파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게 사람이다. 

기업은 사람이 아니다. 기업에는 사람과 같은 권리를 부여할 수 없다. 

사적 이윤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 조직은 정치 권리가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강력한 금전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한 정책은 사회적 공익성을 도모할 수 없게 되며, 선거는 이전투구의 장이 되고 만다. 정치 행위를 하는 삼성권력을 정치 과정에서 몰아내는 것은 공화국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 모든 게 정치다. 경제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문제다. 

앞으로도 자본권력과 시민 간의 갈등과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