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독재 연재 3부 새 시대를 향해 문제는 정치다 2
성장 담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재벌 개혁은 쉽게 공격받았다.
“재벌을 해체하고 성장할 수 있느냐” 보수세력의 공격
경제적 성과의 긍정성은 삼성의 불법•편법 행위에 대한 처벌의
당위성마저 질식시켰다.
재벌 개혁에 대한 공격은 재벌의 ‘적극적인 ’투자 회피로 효과를 보았다.
재벌 개혁 공격 논리에 보다 정치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사회적 타협론은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처음 나타났다.
사회적 타협론자들은 스웨덴 발렌베리의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경제 민주화는 복잡하게 생각할 게 없다.
경제 민주화는 정치의 문제다.
삼성이 얶어맨 기존 권력 관계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불법 행위를 처벌할 수 없을뿐더러 재벌 체제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규제 모델도 성공할 수 없다. 물론 삼성을 사회적 공익그룹으로 만드는 모델은 얼마든지 설계할 수 있다.
재벌 개혁론을 경제성장을 목표로 한 또 다른 방법이라고 경제적 의미로만 사용하면, 오히려 재벌 개혁은 삼성이 이룩한 경제적 성과라는 긍정의 대응으로 잠식되었다. 경제적 성과가 일정한 수준으로 올라서면 정부의 개혁적 규제는 성장의 걸림돌로 인식되기 마련이었다.
경제적 성과의 긍정성은 삼성의 불법•편법 행위에 대한 처벌의 당위성마저 질식시켰다.
재벌 개혁에 대한 공격은 재벌의 ‘적극적인 ’투자 회피로 효과를 보았다.
개혁정부 초기에 어중간한 재벌 개혁론이 불거지면 되레 삼성을 비롯한 재벌은 투자를 미루며 개혁정부를 곤경에 빠뜨렸다. 그러자 재벌의 투자 회피가 개혁졍부를 길들인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독재정권 시절과 달리 민주화 이후에는 기업에게 투자를 명령하는 상위 존재가 없어졌다. 투자 대상과 시기, 규모는 오로지 삼성 자신의 판단에 따랐다.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정부는 각종 혜택을 주었지만 삼성은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삼성은 오히려 더 많은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규제 완화를 위해 삼성은 전방위적으로 정치를 벌였고 제법 성공했다. 이제 삼성의 정치적 실천을 막지 못하면 국가의 재벌 규제 정책을 아예 사라져버릴 지도 모른다.
이렇게 경제 민주화를 경제 문제로만 보는 개혁 담론은 뾰족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삼성권력에 짓눌리곤 했다.
그러므로 재벌 개혁은 재벌의 정치적•사회적 권력을 해체하는 개혁을 동반해야 성공할 수 있다. 재벌 개혁론의 궁극적 지향이 경제성장에 갇혀 정치적•사회적으로 풍부하게 다뤄지지 못하면 재벌 개혁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재벌 개혁 공격 논리에 보다 정치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재벌을 해체하고 성장할 수 있느냐”라는 보수세력의 문제 제기도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적극적으로 응대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아무리 재벌을 지원해도 경제성장률 7%를 넘는 고도성장을 이룰 가능성은 희박하다. 고도성장을 못하더라도 재벌 개혁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은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불법, 탈법 행위조차 용인하며 키운 재벌이 국가와 국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정치적으로 분명히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반복되는 개혁의 실패 때문에 이제 재벌 개혁만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지친 표정을 짓는다. 개혁정부도 지쳤고 경제학자도 지쳤으며 시민도 지쳤다. 삼성 총수 일가의 집요한 경영권 세습 욕망에 지친 사람들은 삼성의 세습 의지를 꺾을 수 없다며 푸념한다. 그 결과 삼성권력은 어렵지 않게 유지되었으며, 급기야 사회적 타협론이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적 타협론은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처음 나타났다.
외국의 금융자본에 맞서 재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면서 국가 산업 기반을 지키기 위해 재벌과 국가 그리고 노동계, 시민사회가 타협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노동은 재벌총수 일가의 기업 집단에 대한 지배력을 보장하고, 재벌 총수 일가는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국가는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나아가 경영권 상속 관련 주식에 대해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대신 노동기본권을 인정하고, 이사회의 일정 정도를 정부, 노조, 시민단체에 할당해 사회 감시를 받게 하며, 투자 수익의 일정액을 사회 공익 자금으로 확보해 투자해야 한다고도 했다.
사회적 타협론자들은 스웨덴 발렌베리의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발렌베리 가문은 상속 때마다 주식을 발렌베리 재단에 기부하고 가문은 세제상의 다른 혜택을 받았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재단이 지주회사의 최대 주주가 되어 여러 개의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또한 발렌베리 가문으로 대표되는 재계는 노조와 타협에 성공함으로써, 노조가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기업은 노조를 인정하고 납세를 늘려 복지 재정을 지원했다.
발렌베리는 삼성과 그룹 지배 형식에서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대응면에서는 전혀 다르다. 삼성과 비슷하게 발렌베리 가문 또한 안정적인 피라미드형 지배 구조를 구축하고 차등 의결권을 행사해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면서 대대로 경영권을 승계한다.
그런데도 국민이 존경한다. 발렌베리의 계열사들은 실질적으로 독립 기업들이라 삼성처럼 일감 몰아주기도 없고, 총수 일가가 비상장 기업 지분을 취득해 엄청난 차익을 거두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차명으로 자산을 빼돌리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적 타협론의 타당성을 떠나 더 중요한 문제는 이를 삼성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적 타협을 강제하는 데 결정적인 것은 정치적 힘이다.
그런데 지금 삼성은 정부, 국회, 법원, 언론에 촉수가 닿아 있기 때문에 삼성에 유리한 결론을 언제든지 이끌어 낼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타협론자들이 주장하는 노동기본권 인정이나 공익 자금 확보, 투자 약속은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채 세습만 완결시켜주는 것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또한 사회적 타협을 법으로 강제하려 할 때 국회에서 동의할 의원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언론은 타협 과정을 삼성의 시각으로 보도할 것이다. 그리고 삼성에게 불리한 타협이 강제되면 삼성은 소송을 벌일 것이다. 때로는 헌법 소원도 불사할 것이다.
그러면 법원은 관례대로 삼성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다. 개혁적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정치적 근거가 어디에도 없는 셈이다. 한국의 기울어진 정치장에서 균형 있는 사회적 타협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삼성권력은 끝없는 삼성맨 증식과 변이를 통해 사회를 잠식하며 소유 지배 구조의 정당성을 다양하게 설파하고 있다. 그것에 현혹된 것은 대중만이 아니다.
사회적 타협론을 주장하는 엘리트에게는 소유 지배 구조를 존속시켜야만 삼성이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들 또한 삼성에 감염된 것이다. 삼성의 소유 지배 구조를 여전히 미래 지향으로 믿는 사회에서는 어떠한 개혁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경제 민주화는 복잡하게 생각할 게 없다.
헌법 119조 2항에서 보장하는 경제 민주화 조항을 지키면 된다. 국민주권에 입각한 국가권력이 사회적 가치와 합법적 범위를 벗어난 삼성권력을 처벌하면 될 일이다.
삼성의 총수 일가가 자신의 소유 지배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탈법•불법 행위를 저지르므로 문제의 핵심인 총수 일가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삼성과 얽히고설켜 그 처벌을 미루는 국가권력에 있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는 정치의 문제다.
삼성이 얶어맨 기존 권력 관계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불법 행위를 처벌할 수 없을뿐더러 재벌 체제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규제 모델도 성공할 수 없다. 물론 삼성을 사회적 공익그룹으로 만드는 모델은 얼마든지 설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델에 이를 수 있는 정치적 다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그것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정치권력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경제학자들의 재벌 개혁에 대한 발상은 착각일 뿐이다. 경제 민주화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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