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독재 연재 2부 이건희 시대, 정치독재에서 자본독재로,,,

정치독재에서 자본독재로

삼성의 식민지

자본독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치에 절망할수록 국민은 삼성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다.

민주주의 이념의 진공 상태에 빠진 사회에 삼성 근본주의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삼성은 삼권분립으로 나뉜 국가기관에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망을 구축했다.

삼성이 진정한 권력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국민의 지지와 동의가 있었다.

삼성권력은 저항 정치의 부재로 인해 더욱 빛을 발했다.  

개혁정부의 실패와 자본독재의 개막

1987년 6월항쟁은 제도적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쿠데타나 정변을 통한 집권의 시대가 지나고 선거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가 확고한 ‘룰’이 된 것이다. 이제 정치권력은 ‘선출’되었으며, 전일적이고 폭압적인 절대권력은 사라졌다.

개혁정부에 대한 시민의 기대는 컸다. 왜곡된 민주화의 역사 속에서도 민주화운동세력이 거듭 집권에 성공하면서 적폐 청산과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은 높아만 갔다. 개혁정부는 시민의 열망에 부응해 기존 정권과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민주화는 한때의 흥분과 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개혁정부도 재벌을 개혁하지 못했고 재벌 중심의 성장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의 ‘신 재벌 정책’은 3개월 만에 백기를 들었고, 김대중 정부의 ‘재벌 개혁 5+3원칙’은 임기 후반부에 거의 흐지부지 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시장 개혁 3개년 로드맵’은 일정한 진전이 있었지만, 역시 집권 후반기에 좌초했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이 곧바로 민주주의의 내용적 완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민주화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폐쇄적 정책 결정 과정이 개방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군부독재정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하던 것에 비해 민주화 시대에는 사회 각 계급 계층의 역학 관계에 의해 국가 정책이 정해졌다. 독재정권으로부터의 해방은 ‘만인의 자유’로 이어졌지만, 그것의 본질은 ‘만인의 자유로운 계급투쟁’이었다.

 민주주의 자체가 ‘정의’였던 시대가 지나고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절대권력이 사라진 권력의 공백을 새로운 역학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 세력의 쟁투가 벌어진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제 그 자체로 더 이상 ‘정의’도 ‘양심’도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여러 세력의 쟁투가 벌어지는 ‘합법적 장(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치독재가 사라진 권력의 쟁투장에서 승리한 것은 재벌이었다. 

개혁정부는 최소한 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에게 부여되는 계급투쟁의 중립적 심판관 역할마저 수행하지 못했다. 오히려 군부독재의 절대 권력에 유착해서 사회적 지배력을 행사하던 재벌이 절대 권력이 사라진 빈 공간을 독점하고 직접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자본독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 ‘밖’에서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와 시민권을 무시하며 무단통치를 자행하던 정치독재 시대에서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계급 지배를 시도하는 자본독재 시대로 이행함에 따라 ‘독재 대 반독재’의 프레임에도 변화가 생겼다. 우선 독재의 성격이 ‘정치’독재에서 ‘자본’독재로 변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기존의 ‘반독재’진영의 분화가 일어났다. 민주와 개혁을 표방하며 집권한 정치세력이 재벌과 유착하고 심지어 자본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반독재 진영에서 이탈한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차악/차선의 정치적 선택 논리에 갇힌 민주세력은 여전히 보수적 정당 체제에 포섭된 채 자본독재에 저항할 동력을 잃고 말았다. 자본독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노동 진영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민주세력은 외면했고, 민중 진영과 소위 시민민주주의세력의 연대도 무너졌다. 명백한 민주주의의 내용적 후퇴였다.

정치에 절망할수록 국민은 삼성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다. 

개혁정부에 대한 실망, 정치 냉소, 그리고 저성장 경제 불황의 늪, 이 모든 시대의 우울 건너에 삼성이 있었다. 개혁정부에 대한 기대의 좌절로 국민은 탈정치화했다. 이건희는 정치는 4류이고 정부는 3류라고 질책하면서 정치를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 국민의 탈정치와 정치 냉소주의를 부추겼다.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로 국민의 관심은 공적인 정치 영역에서 사적인 일상 영역으로 급속히 매몰되었다. 그 위에 장기 불황의 한파와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무한 경쟁시대가 열리면서 국민에게는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모이면 정치 얘기로 시작해서 정치 얘기로 끝나던 시절이 가고 경제 얘기로 시작해서 경제 얘기로 끝나는 시절이 온 것이다. 공적인 담론도 사적인 담화도 그 근본이 정치에서 경제로 바뀌었다.

민주주의 이념의 진공 상태에 빠진 사회에 삼성 근본주의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삼성은 경제의 근본, 시대의 근본, 국가의 근본으로 자리 잡았다. 두 번의 개혁정부의 실패는 전례 없는 탈정치의 시대를 열었고, 국가의 운명은 정치가 아닌 경제 특히 삼성에 달렸다는 삼성 근본주의가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급기야 개혁정부마저 삼성을 추어올리면서 삼성 근본주의를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삼성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정부 요직에 앉힘으로써 삼성 근본주의의 출현을 공식화했다.삼성 근본주의가 출현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기틀이 공고해지자 결국 기업가 출신의 이명박 정부가 탄생했다. 이어 민주세력의 정치적 역량이 위축된 가운데 극단적 보수정부인 박근혜 정부가 출현했다.

삼성의 식민지

이건희 시대의 삼성은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통해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권력에서 직접 사회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본독재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삼성은 민주주의 체제를 적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스템에 들어간 이상 권력 방어는 훨씬 까다로운 과제가 되었다. 이병철로부터 정치적 자본가 역할을 세습 받은 이건희는 복잡해진 민주주의 체제의 시스템에 들어가 권력의 연결망을 다양하게 구축하는 데 아버지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삼성은 삼권분립으로 나뉜 국가기관에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망을 구축했다.

민주주의체제에서도 실제 권력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 정보를 파악하고 실효성 있게 대처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 체제를 내부에서부터 흔들었다.

민주주의 체제의 작동 방식은 다양한 사회세력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매우 복잡해졌다. 하지만 결국 삼성권력으로 환원되곤 했다.

삼성권력에 대한 옹호는 단순히 최고통치자의 말 한마디에서가 아니라 다양한 국가기관이나 사회 부문에서 쏟아졌다. 즉 입법부에서는 국회의원의 지지가, 행정부에는 관료의 지지가, 사법부에는 판사의 지지가 교차했다. 

각각의 공간에서 쏟아낸 삼성 지지는 삼성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로 올려놓았다. 다양하게 포진한 삼성 지지세력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는 고유의 생동감을 잃고 말라죽을 지경이었다.

또한 국가 정책 결정이 민주화 이후 투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삼성권력은 오히려 독재정권 시절보다 눈에 덜 띄었다. 그 까닭은 삼성권력이 정치사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특히 언론을 효과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지배와 피지배, 명령과 복종,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삼성이 진정한 권력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국민의 지지와 동의가 있었다. 

이는 독재정권 시절 힘의 행사를 통한 공포감의 조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삼성의 경제적 성과가 커지자 국민 자신을 삼성에 대입했다. 바로 내재화다. 국민은 삼성을 내재화함으로써 삼성에 종속된 객체가 되어버렸다. 

삼성이 제공하는 물적 풍요를 누릴 수만 있다면 삼성의 비정상적인 소유 지배 구조도 용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하는 데 소극적이 되면서 민주주의 체제를 이끌 시민의 저항성이 위축되었다.

삼성권력은 저항 정치의 부재로 인해 더욱 빛을 발했다. 

삼성권력은 강제력이 아니라 생활 세계의 일상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진정한 권력이 된 것이다.

민주화 이후 단숨에 삼성권력도 해체될 것이라는 기대는 우스웠다. 

오히려 삼성권력은 민주주의 체제에 안착해 비정상적인 소유 지배 구조와 권력 세습마저 완성해갔다. 그 결과 공동체는 더욱 불평등해졌고 국민의 삶은 점점 팍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