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독재 연재 2부 이건희 시대 삼성자동차 IMF 외환위기 2 

애국심에 가린 삼성자동차 문제 결국 IMF 사태

미우나 고우나 삼성 IMF 사태 주범 삼성을 구한 지역감정

삼성의 승용차 사업 진출은 정부의 시장 관리 역할을 부정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삼성이 승용차 사업에 진출해 포식자로 행동하면서 자동차 산업 전반의 질서가 혼탁해졌다. 메기 한 마리가 시장 질서를 교란한 결과 다른 기업의 부도가 잇따르고, 한국의 자동차 시장 나아가 한국 경제가 혼란에 빠진 것이다.

IMF 사태 주범을 구한 지역감정

김대중 정부는 1998년 12월 6일, 삼성자동차를 대우전자와 빅딜(대규모 사업 교환)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양쪽 그룹의 업종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시도였다. 물론 흡수되는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의 일부는 구조조정을 감수해야 했다.그러자 삼성자동차 유치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던 부산시와 시민단체, 협력업체가 삼성차 빅딜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건희의 탐욕과 김영삼 정부의 무능, 그리고 지역이기주의를 향해 날아가야 할 비난의 화살은 엉뚱하게도 김대중 정부를 정조준했다.

보수정치세력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해 정세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에 동조해 시장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한나라당은 영남권에서 장외 집회를 열어 대기업의 빅딜 논의를 영남 기업 죽이기로 몰아붙였다.

1999년1월 24일, 마산 집회에서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은 “어떻게 골라서 경남 기업만 죽일 수 있느냐”라고 주장했다. 지역감정을 악용해 표밭을 일구려는 심산이었다. 부산의 정치권과 시민은 ‘삼성차 빅딜은 전적으로 정치 보복이며 부산 경제 죽이기’라고 입을 모았다.김영삼은 집회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집권 기간 동안의 부패와 무증을 덮으려 했다.

삼성자동차는 6월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이건희 책임론이 강하게 일자 이건희는 상장하지도 않은 삼성생명 주식을 출연해 부채를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를 무마하려 했다. 

하지만 삼성생병의 상장은 결국 총수 일가의 수익 증대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귀결될 게 뻔했다. 이건희의 계획은 무산되었고 더 직접적이고 확실한 책임이 요구되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의 일부 생산 라인의 부산 이전을 발표하며 지역의 반발을 무마하려던 시도도 무위에 그쳤다. 그 정도로는 부산 시민의 마음을 달래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부산 시민은 오직 공장 재가동을 요구했다. 

부산시장, 시의회의장, 강서구청장은 관용차를 모두 삼성 승용차로 바꾸는 등 삼성차 소비 캠페인을 벌이며 계속적인 공장 가동을 주장했다. 물론 관용차를 삼성 승용차로 바꾼다고 해서 삼성자동차가 다시 살아날 리 만무했다. 

부산시와 시민의 삼성 승용차에 대한 인식은 집착에 가까웠다. 부산시장은 부산경제가꾸기시민연대와 함께 더욱 강격한 목소리를 냈다. 부산 시민의 불만은 반정부 투쟁의 성격까지 띠었다.

삼성자동차 처리는 해외 매각으로 결론이 났다. 

결국 삼성자동차는 르노에 헐값에 팔렸고 삼성상용차는 청산되었다. 

오직 공장 재가동을 요구한 부산 시민의 정치적 압력에 밀린 헐값 매각이었다. 삼성자동차에 출자하거나 대출해주었던 삼성 계열사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일반 채권단이 입은 피해였다. 

은행 채권단은 삼성자동차에 빌려준 자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했다. 그러자 채권단의 손실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다. 기업이 진 빚을 국민 세금으로 갚아준 꼴이었다. 온 국민이 피해자였다.

하지만 이득을 본 자들도 많았다. 먼저 부산 시민은 김대중 정부에 맞선 승리자였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지역감정을 부추겨 IMF 외환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피해갈 수 있었다. 오히려 야당으로서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효과마저 누렸다. 

삼성도 결국 그룹 전체에 부담을 주는 사업을 처분함으로써 그룹 전체의 재정적 어려움을 털어낼 수 있었다. 이건희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비상장 주식 보유분도 굳건히 방어했다.

결국 IMF 위기로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은 삼성이었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할 정치세력과 무리한 투자로 국가적 손실을 안긴 삼성 총수는 지역감정에 의존한 정치적 역학 관계에 힘입어 국민 경제를 희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금 모으기 운동으로 국가 전체가 애국적 열정에 물들어 사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삼성의 무리한 자동차 사업 진출에 따른 잘못을 지적하는 일에 둔감해졌다. 

여기에 지역감정을 동원한 정치 전략이 결부되어 삼성의 어두운 과거는 완전히 세탁되었다. 그렇게 삼성자동차는 사라졌지만 삼성권력은 살아남았다.

미우나 고우나 삼성 

1999년 광복절에 김대중은 특별히 재벌 개혁을 강조했다. 김대중정부는 ‘5+3 원칙’을 통해 재벌 개혁을 시도했다. ‘5+3 원칙’은 기업 경영의 투명성 제고, 채무 보증의 해소, 재무 구조의 획기적 개선, 핵심 부문의 설정과 중소기업과의 협력 강화, 지배주주 및 경영진의 책임 강화를 골간으로 하면서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 차단, 순환 출자 및 부당 내부 거래 억제, 변칙 상속 및 증여의 방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김대중이 재벌 개혁을 강조하자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구조 개혁을 회피하려는 재벌들의 행태가 얄밉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재벌 개혁에 마치 정권의 명운이라도 건 듯 재벌을 몰아붙이며 중산층과 편을 가르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우나 고우나 재벌은 한국 산업을 끌고 가는 견인차다.”라고 즉각 응수했다. 

물론 이날 <중앙일보>의 논조는 몰염치하게 재벌의 ‘고운’ 점만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벌이 미원도 한국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재벌 개혁을 섣불리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재벌을 적극 엄호했다. 

어느 정부도 감히 재벌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공표한 것이다. 

이후 재벌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과 정부의 재벌 개혁은 국가 경제의 해체와 대량 실업으로 이어진다는 선동이 난무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던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남은 건 삼성밖에 없다’라는 위기감이 국민을 더욱 불안에 떨게 했다. 

삼성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가 되었고, 삼성의 무리한 승용차 사업 진출이 IMF 사태를 심화시켰다는 사실은 철저히 잊혔다.

재벌의 소유 지배 구조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는 점에서 어느 시기와 마찬가지로 김대중 정부에서도 재벌 권력은 건재했다. 

삼성자동차의 빅딜 논의와 청산이 부산 지역의 여론에 밀려 굴절되었듯이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재벌 개혁, 특히 다각적 문어발식 경영을 해체하고 업종 전문화를 이루려던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개혁정부의 재벌 개혁 정책은 좌절되었고 기업 구조조정은 재벌의 자율에 맡겨졌다. 다시 재벌의 세상이 되었다.